첫 번째 결 · 2026. 08. 29.

아흔 날의 빨강

선인장 위에서 길러진 색, 코치닐 레드

첫 번째 결 아흔 날의 빨강

첫 번째 결

09

붉은색을 얻으려면 먼저 선인장을 심어야 한다.

오악사카의 밭에는 부채선인장이 넓적한 손바닥을 겹쳐 세우고 서 있고, 그 위에 흰 솜 같은 것이 군데군데 붙어 있다. 멀리서 보면 곰팡이나 먼지 같다. 실제로 이것을 처음 배에 실어 보낸 사람들은 장부에 낟알이라고 적었다. 손톱으로 흰 것을 문지르면 부스러지면서, 그 아래에서 진한 붉은 액체가 손끝에 번진다.

그 액체가 오백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색 가운데 하나였다.

01흰 솜 아래에서 나오는 것

코치닐은 딱정벌레가 아니다. 부채선인장의 줄기에 자리를 잡고 평생 거의 움직이지 않는 깍지벌레류이고, 상업적으로 기르는 종은 Dactylopius coccus다. 가장 즐겨 붙는 기주는 부채선인장 가운데서도 Opuntia ficus-indica다.

흰 솜은 몸에서 분비한 왁스성 물질이다. 햇빛과 건조를 막는 덮개이지, 사람이 쓰는 부분이 아니다. 사람이 쓰는 것은 그 아래 몸통 안에 쌓인 카르민산이다. 그리고 이 분자는 색을 내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곤충을 노리는 포식자 대부분을 물리치는 물질이고, 벌레 입장에서 붉은색은 장식이 아니라 방어 장비다.

이 이야기에서 세 단어가 계속 갈라진다. 미리 세워 두면 뒤가 편하다.

이름무엇을 가리키나어디서 쓰는 말인가
코치닐곤충 자체, 그리고 말린 원료농사와 무역의 말
카르민산곤충이 만드는 붉은 분자화학과 생물학의 말
카민카르민산을 금속염과 결합시킨 색소 제제공장과 성분표의 말

표 읽기표는 위에서 아래로 읽는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벌레에서 멀어지고 성분표에 가까워진다.

카르민산은 몸 안에 고르게 들어 있지 않다. 생활사 단계별로 나눠 잰 연구에서 가장 높은 값은 성체 암컷 단계의 26퍼센트였고, 가장 낮은 단계는 2령 약충이었다. 알에서 막 깨어난 것과 다 자란 것 사이에 몇 배의 차이가 있다.

01이 절의 근거자료 5
  • 코치닐이 깍지벌레류라는 점, 상업종 Dactylopius coccus와 기주 Opuntia ficus-indica, 왁스 피복: Timothy D. Schowalter, "Ecology, use, and management of cochineal insects (Hemiptera: Dactylopiidae)", Journal of Integrated Pest Management 16(1), 2025, doi:10.1093/jipm/pmaf033
  • 카르민산이 대부분의 무척추 포식자를 물리치는 방어물질이라는 점: Schowalter (2025). 본문의 「곤충을 노리는 포식자」는 이 범위를 옮긴 것이다.
  • 생활사 단계별 카르민산 함량(가장 작은 불임 성체 암컷 26.27퍼센트가 최고, 2령 약충이 최저): H. L. Flores-Alatorre, V. H. Abrego-Reyes, J. Reyes-Esparza, E. Ángeles, F. Alba-Hurtado, "Variation in the Concentration of Carminic Acid Produced by Dactylopius coccus (Hemiptera: Dactylopiidae) at Various Maturation Stages", Journal of Economic Entomology, 2014, doi:10.1603/ec13475
  • 카르민산 생합성 경로: R. Kannangara et al., Nature Communications 8, 2017
  • 코치닐·카르민산·카민의 용어 구분: 위 자료들과 아래 FDA 2009 규칙·EFSA 2015 의견에서 세 용어가 각각 다른 대상에 쓰이는 방식을 대조해 정리

02아흔 날을 세는 일

그래서 이 농사의 핵심은 기르는 일이 아니라 세는 일이다.

한 생태 리뷰가 정리한 값으로, 섭씨 24도에서 알에서 산란 직전까지 평균 93일에서 98일이 걸린다. 26도에서는 68일에서 77일로 줄어든다. 밭의 온도가 수확 달력을 매년 조금씩 다르게 밀어 놓는다.

오악사카 농민은 화전으로 노팔 밭을 열고 coa라는 전통 농구로 선인장을 심었다. 벌레를 다른 줄기에 옮겨 붙이고, 비를 막고, 천적을 걷어 내고, 잡초를 뽑는다. 그리고 약 아흔 날째, 산란이 시작되기 전에 손으로 털어 낸다. 거둔 벌레는 뜨거운 물에 담그거나 열로 죽인 뒤, 생중량의 30퍼센트 수준이 될 때까지 말린다.

말린 코치닐 1파운드를 얻는 데 약 7만 마리가 필요하다는 수치가 널리 통용된다. 여러 자료가 서로를 참조하며 반복해 온 개략치이고, 그 계산의 1차 측정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말린 코치닐은 은회색이 도는 마른 알갱이다. 손바닥에 부어 놓으면 색소처럼 보이지 않는다. 씨앗 한 줌처럼 보인다.

02이 절의 근거자료 4
  • 온도별 발육 기간(24도 93~98일, 26도 68~77일), 약 90일째 손 수확, 열처리와 생중량 30퍼센트까지의 건조: Schowalter (2025). 본문은 이 값이 한 리뷰가 정리한 값임을 밝혀 두었다.
  • 화전 개간과 coa 농구, 제초·천적 관리 등 재배 공정: Carlos Marichal & Ernest Sánchez Santiró, "Mexican Cochineal, Local Technologies and the Rise of Global Trade from the Sixteenth to the Nineteenth Centuries", in 『Global History and New Polycentric Approaches』 (Springer, 2018)
  • 원주민 재배자가 곤충의 생성 과정을 상세히 이해했고 그 지식이 수 세기 동안 재배자 손에 남았다는 점: Deirdre Moore, "The Heart of Red: Cochineal in Colonial Mexico and India" (Harvard 박사학위논문, 2021)
  • 1파운드에 약 7만 마리: 여러 자료가 서로를 참조하며 반복해 온 개략치다. Schowalter (2025)도 자체 측정이 아니라 선행 문헌 인용으로 싣는다. 원 측정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고, 본문에도 그 지위를 적어 두었다.

03씨앗이라는 이름으로 실려 갔다

유럽 장부에 이 물건은 grana로 적혔다. 스페인어로 낟알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매력적인 이야기 하나가 자란다. 스페인이 독점을 지키려고 곤충을 곡물로 위장했다는 것이다. 다만 낟알 계열의 이름은 신대륙 코치닐이 오기 훨씬 전부터 곤충 염료에 붙어 있었다. 구세계의 케르메스를 플리니우스는 granum이라 적었고, 그것을 식물의 혹으로 여긴 착오는 고대부터 이어졌다. 새 물건이 도착했을 때 옛 이름이 따라붙는 일은 흔하다. 이름 하나만으로는 조직적인 기만을 증명하기 어렵다.

증명하기 어려운 것과 별개로, 물건은 움직였다. 베라크루스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코치닐은 재수출망을 타고 오스만권과 페르시아와 이집트로 흩어졌고, 아카풀코에서 마닐라로 이어지는 항로를 통해 동아시아에도 닿았다. 다만 도착과 정착은 다른 일이어서, 중국에서 이 색의 교역이 정점에 이르는 것은 한참 뒤인 19세기다.

물건이 먼저 갔고,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중에 정해졌다. 1704년부터 1720년 사이 유럽의 학자들은 이 붉은 것이 식물인지 동물인지를 두고 다투었다. 멜히오르 더 라위스허르는 법정에 현미경을 들여 그것이 동물임을 입증했다.

03이 절의 근거자료 5
  • 낟알 계열 명칭이 신대륙 코치닐 이전부터 곤충 염료에 붙어 있었다는 점, 플리니우스의 granum, 그것을 식물의 혹으로 여긴 고대의 착오: H. Michell, "Κόκκος or Kermes", The Classical Review 5(3–4), 1955, doi:10.1017/s0009840x00164303
  • 케르메스가 신대륙 카민 도착 이전 유럽의 주력 적색이었다는 점: María Luisa Vázquez de Agredos Pascual, M. T. Doménech Carbó, D. J. Yusá Marco, S. Vicente Palomino, L. Fuster López, "Kermes and cochineal; woad and indigo", Arché, 2007
  • 재수출망과 아카풀코–마닐라 항로, 중국 유입 시점과 1820년대~1870년대 중반의 교역 정점: Niping Yan, "In the weft of words: Mapping global and local connectivity in the Chinese terminology for American cochineal", Journal of Global History, 2025
  • 유럽·서아시아에서의 점진적 대체와 동아시아·동남아시아에서 현지 곤충 염료가 계속 쓰였다는 점: Ana Serrano, "The Red Road of the Iberian Expansion: Cochineal and the Global Dye Trade" (Universidade Nova de Lisboa 박사학위논문, 2016)
  • 1704~1720년 코치닐의 동물성을 둘러싼 유럽 학계의 논쟁과, 멜히오르 더 라위스허르가 법정에 현미경을 들여 동물임을 입증한 일: Marc J. Ratcliff, "The Study of Animalcules at the Turn of the Eighteenth Century", 2016, doi:10.4324/9781315553696-4

04값은 배가 뜨기 전에 정해졌다

스페인은 최고 등급인 grana fina의 생산을 오악사카에 몰아 두고 사실상의 독점을 유지했다. 왕실의 명령과 항구 통제가 그 독점의 틀이었다면, 생산을 실제로 굴린 것은 빚이었다.

repartimiento de comercio라고 불린 선대 구조는 이렇게 이어진다. 멕시코시티 상인이 오악사카 상인에게 자금을 대고, 오악사카 상인이 지방 행정관에게 대고, 행정관이 농민에게 댄다. 농민은 그 돈을 현금이 아니라 코치닐로 갚는데, 갚는 값은 계약 시점에 정해진 고정 가격이다. 선대 계약에서 그 값은 대개 파운드당 12레알, 그러니까 1.5페소로 묶였다. 국제 시세는 그 위에서 따로 움직였고, 차액은 중간에 앉은 사람들이 가져갔다.

도식 01값이 먼저 정해지는 사슬

멕시코시티 상인에서 농민까지 선대금이 내려가고, 농민이 갚는 코치닐은 반대 방향을 따라 올라왔다. 선대 계약의 값은 대개 파운드당 12레알이었다.

만든 것자료: Jeremy Baskes, 「Colonial Institutions and Cross-Cultural Trade」 (2005). 네 자리의 순서와 두 방향, 고정 가격만 표시했고 거래의 횟수와 기간은 나타내지 않았다.

규모는 작지 않았다. 1758년부터 1783년까지 연평균 생산이 92만 파운드 남짓이었고, 이 시기 생산액을 평가할 때 쓰는 단가인 파운드당 은화 20레알로 치면 한 해 200만 은페소를 넘는다.

이 구조를 강제노동으로 읽을지 신용 제도로 읽을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갈린다. 착취와 강제를 강조하는 오랜 독해가 있고, 위험이 큰 장거리 거래를 성립시킨 신용 공급과 계약 집행 장치로 보며 농민의 시장 대응 능력을 함께 읽는 독해가 있다. 어느 한쪽으로 닫지 않는 편이 사실에 가깝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생산 현장은 유럽식 대농장이 아니었다. 코치닐은 원주민 가족 농가의 선인장 밭과 뒷마당에 흩어져 자랐다. 부피에 비해 값이 높고 말린 뒤에는 옮기기 쉬웠으므로, 작은 산지 여럿이 대서양과 태평양 시장에 곧장 연결될 수 있었다. 제국은 항구를 쥐었고, 기술은 뒷마당에 남아 있었다.

코치닐의 값은 런던과 암스테르담의 거래소에서 정해지기 전에, 오악사카의 선대 장부에서 이미 한 번 정해져 있었다.

04이 절의 근거자료 6
  • grana fina의 오악사카 집중과 등급 구분: Jeremy Baskes, 『Indians, Merchants, and Markets: A Reinterpretation of the Repartimiento and Spanish-Indian Economic Relations in Colonial Oaxaca, 1750–1821』 (Stanford UP, 2001) / Daniel W. Gade, "Past Glory and Present Status of Cochineal", Geographical Review, 1979
  • repartimiento de comercio의 선대 사슬, 파운드당 12레알(1.5페소)의 선대 계약 단가, alcalde mayor의 계약 집행력: Jeremy Baskes, "Colonial Institutions and Cross-Cultural Trade: Repartimiento Credit and Indigenous Production of Cochineal in Eighteenth-Century Oaxaca, Mexico", The Journal of Economic History 65(1), 2005, doi:10.1017/s0022050705050072
  • 1758~1783년 연평균 922,600파운드, 생산액 평가에 쓰인 파운드당 약 20은레알, 연 200만 은페소 초과, 1784년 이후의 급감: Marichal & Sánchez Santiró (2018). 대상 기간과 계산 단위가 원자료와 일치함을 04-1 통합검수가 확인했고, 이 단가가 선대 계약 단가와 다른 계열이라는 점을 06-1 국소재검증이 다시 확인했다.
  • 강제·착취 독해와 신용·계약 집행 독해의 대립: Jeremy Baskes, "Coerced or Voluntary? The Repartimiento and Market Participation of Peasants in Late Colonial Oaxaca", Journal of Latin American Studies 28(1), 1996 / John K. Chance, 서평, The Americas, 2001 / Sudipta Sen, 서평, Journal of Colonialism and Colonial History, 2003
  • 대농장이 아닌 원주민 가족 농가 중심의 분산 생산이 더 효율적이었다는 점: Baskes (2005)
  • 런던·암스테르담 상인 거래소가 이 상품 사슬의 종점이었다는 점과 가격·운임 계열: Baskes (2001)

05유럽은 빨강이 없어서 산 것이 아니다

유럽에도 붉은색은 있었다. 곤충에서 얻는 케르메스가 있었고, 뿌리에서 얻는 매더가 있었고, 배로 실려 오는 브라질우드가 있었다.

아메리카 코치닐이 이긴 것은 적은 양으로 강한 색을 낸다는 점이었다. 양모와 비단에 잘 붙었고, 매염제와 산도를 바꾸면 진홍에서 자주까지 색조의 폭이 넓게 열렸다. 여기에 주석계 매염제를 쓰는 공정이 더해지면서 이전보다 훨씬 밝은 스칼렛을 뽑을 수 있게 됐다. 원주민의 생물 농사와 유럽의 매염 화학이 한 색 안에서 만난 셈이다.

『멘도사 코덱스』 43r 세부. 공물 목록 가운데 코치닐 자루가 그려진 부분.

FIG. 01조세로 걷힌 색

공물 목록에 코치닐 자루가 그려져 있다. 색이 사고파는 물건이기 전에 걷어 가는 물건이었다는 사실이 그림 한 장에 남아 있다.

찾은 것『Codex Mendoza』 (MS. Arch. Selden. A. 1, fol. 43r) · 옥스퍼드 보들리언 도서관 소장 ·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그렇게 만들어진 빨강은 곧 계급의 표식이 됐다. 영국군의 붉은 군복은 하나의 붉은색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그렇지 않다. 사병의 옷은 값싼 매더로 물들여 지급됐고, 군복을 자비로 맞추는 장교들은 더 밝은 코치닐 쪽을 택했다.

그리고 이 빨강에는, 값을 치른 쪽이 미처 몰랐던 성질이 하나 더 있었다.

05이 절의 근거자료 6
  • 케르메스·매더·브라질우드의 선행 사용: Vázquez de Agredos Pascual et al. (2007) / Serrano (2016)
  • 매염제와 산도에 따른 색조 폭: Schowalter (2025)
  • 주석계 매염제가 더 밝은 스칼렛을 만든다는 점: Mara Espírito Santo, Rafael Javier Díaz Hidalgo, Luís Gonçalves Ferreira, Dominique Cardon, Joana Sequeira, Vanessa Otero, Paula Nabais, "Cochineal Reds in Iberia and France: A Comparative Study of 18th Century Tin-Mordant Recipes to Dye Wool", Heritage 8(9): 375, 2025. 이 연구는 18세기 레시피를 다루므로 공정의 효과만 사용하고 발명 연대는 본문에 쓰지 않았다.
  • 사병의 매더와 장교의 코치닐: Colonial Williamsburg Journal, "Dye" (Summer 2012). 박물관 연구지이며 심사 논문은 아니다. 사병 군복 전체를 코치닐로 일반화하지 않았다.
  • 폴란드 코치닐(Porphyrophora polonica)의 종 실재와 유럽 염료 산업에서의 위치: Katarzyna Lech & Maciej Jarosz, "Identification of Polish cochineal (Porphyrophora polonica L.) in historical textiles by high-performance liquid chromatography…", Analytical and Bioanalytical Chemistry, 2016 / D. Mantzouris, I. Karapanagiotis, C. Karydis, "Identification of Cochineal and Other Dyes in Byzantine Textiles of the 14th Century from Mount Athos", 2016
  • 1534년 포즈난 물량과 1547년 세관 장부 소멸: 백과 항목 수준의 재인용이다. 학술 출처로는 확인되지 않았고, 본문에 그 지위를 적어 두었다.

06값과 수명은 같이 가지 않았다

코치닐은 직물에만 쓰인 것이 아니다. 금속염과 결합시켜 투명한 레이크 안료로 만들면 화가의 팔레트에 올라갔다. 유화의 붉은 옷, 붉은 커튼, 뺨의 홍조가 그 위에 얹혔다.

문제는 빛이다. 같은 염료로 물들인 직물과 갈아 만든 레이크 안료를 나란히 놓고 열네 달 동안 빛에 노출한 실험에서, 붉은색 가운데 가장 오래 버틴 것은 매더였고 그다음이 코치닐, 가장 빨리 물러난 것이 브라질우드였다. 같은 염료라도 직물에 물들었을 때가 안료로 갈렸을 때보다 오래 갔다.

그리고 코치닐의 수명은 무엇과 결합했느냐에 달려 있었다. 알루미나에 앉힌 코치닐은 느리게 바랬고, 주석이 들어간 기질에 앉힌 코치닐은 브라질우드와 함께 빠르게 바랬다. 바로 앞 절에서 더 밝은 스칼렛을 뽑아 준 그 주석이다.

퇴색은 색이 조금 흐려지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화가는 붉은색과 보라색의 농담으로 옷의 주름과 살의 부피를 만든다. 그 색이 빠지면 색만 빠지는 것이 아니라 부피가 빠진다. 이 불안정성이 뒤늦게 발견된 것도 아니다. 코치닐과 브라질우드 레이크가 오래 못 간다는 지적은 이미 18세기에 나와 있었다.

반 고흐가 안트베르펜과 파리에서 그린 여섯 점을 인공노화 재현물과 대조한 연구에서 그 빨강은 이미 물러나 있었고, 물러난 자리에는 원래 그 색이 만들던 입체가 없다.

06이 절의 근거자료 4
  • 열네 달 광노출 실험에서의 안정성 순위(매더 > 코치닐 > 브라질우드)와, 같은 염료가 직물일 때보다 레이크 안료일 때 더 빨리 바랜다는 점: Jo Kirby & David Saunders, "A Comparison of the Fading of Dyestuffs as Textile Colourants and Lake Pigments", Heritage 8(7): 260, 2025, doi:10.3390/heritage8070260
  • 알루미나 기질의 코치닐은 느리게, 주석 함유 기질의 코치닐은 브라질우드·에오신과 함께 빠르게 퇴색한다는 점, 그리고 반 고흐가 1885~1888년 안트베르펜·파리에서 그린 여섯 점의 실측: A. Burnstock, I. Lanfear, K. J. van den Berg, L. Carlyle, M. Clarke, E. Hendriks, J. Kirby, "Comparison of the fading and surface deterioration of red lake pigments in six paintings by Vincent van Gogh with artificially aged paint reconstructions", 2005
  • 19세기 코치닐 물감의 고감도 분류: Tatiana Vitorino, Marcello Picollo, Julio M. del Hoyo-Meléndez, "An investigation of the photostability of 19th century artists' cochineal lake pigments using MFT and conventional accelerated ageing tests", Nondestructive Testing and Evaluation, 2024
  • 코치닐·브라질우드 레이크의 불안정성이 18세기에 이미 지적됐다는 점: David Saunders & Jo Kirby, "Light-induced Colour Changes in Red and Yellow Lake Pigments", National Gallery Technical Bulletin

07두 번 무너졌다

첫 번째 붕괴는 정치적이었다.

1821년 멕시코가 독립하면서 오악사카에 묶여 있던 생산 독점이 풀렸다. 과테말라가 들어왔고, 카나리아 제도가 들어왔다. 한 곳에 몰려 있던 생산이 여러 곳으로 흩어졌고, 흩어진 만큼 값을 떠받치던 희소성도 흩어졌다.

두 번째 붕괴는 화학적이었다.

19세기 후반, 독일과 영국에서 나온 합성염료가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다. 1856년의 모베인은 이 전환의 상징으로 자주 인용되지만, 코치닐을 단번에 대체한 단일 적색의 발명은 아니었다. 합성이 이긴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값과 규모와 균일함, 그리고 주문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색상의 폭이었다. 한 경제사 연구는 이 국면을 초기 세계화의 종결이라고 부른다.

오늘날 유럽에서 코치닐을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곳은 카나리아 제도뿐이다. Cochinilla de Canarias라는 원산지보호명칭은 제도 전체를 범위로 지금도 유효하고, 실제 재배는 란사로테의 과티사와 말라 일대에 남아 있다.

카나리아 제도 정부는 지금도 이 명칭으로 등록된 생산자와 아직 벌레가 붙어 있는 선인장 밭을 지원 대상 목록에 올려 둔다.

  1. 폴란드 코치닐이 포즈난 세관 장부에서 사라진다1차 사료 미확인

  2. 221년
  3. 마다가스카르 포르도팽에 부채선인장 산울타리

  4. 9년
  5. 므농빌이 오악사카에 잠입한다

  6. 44년
  7. 멕시코 독립으로 오악사카 독점이 풀린다

  8. 35년
  9. 모베인

  10. 68년
  11. 남부 마다가스카르의 선인장이 사라진다

  12. 46년
  13. FDA가 적색 2호를 금지한다

  14. 33년
  15. 코치닐·카민 이름 표시 규칙과 그 발효

  16. 16년
  17. 석유계 인증색소를 없애기로 한 목표 시점

도식 02코치닐을 둘러싼 사건들

본문에 등장하는 사건 아홉 건을 발생 순서대로 놓았다.

만든 것자료: 이 글의 근거 가운데 해당 항목. 좁은 화면에서 읽히도록 사건 사이를 같은 간격으로 두고, 실제로 흐른 햇수는 사이마다 숫자로 적었다. 인쇄본에서는 같은 사건을 시간 간격에 비례해 배열한다.

07이 절의 근거자료 7
  • 1821년 독립 이후 독점 해체와 경쟁 산지의 등장: Marichal & Sánchez Santiró (2018) / N. N. Mahapatra, "Pigment dyes", 2016
  • 므농빌이 1777년 오악사카에 잠입해 현지 재배자에게서 재배 지식을 얻고 곤충을 선인장째 생도맹그로 밀반출해 길러 낸 일, 그리고 그 이전이 후속 시도들에 미친 영향: Martín Biersack, "Imperial Secrecy versus Scientific Exploration. Nicolas Thiéry de Menonville's Botanical Mission to Bring Cochineal from Colonial Mexico to Saint-Domingue", Itinerario, 2025, doi:10.1017/S0165115325000130
  • 코치닐이 19세기 첫 3분의 2까지 대량 수요를 유지하다가 독일 화학 기업의 인공 염료에 밀려났다는 점과 「초기 세계화의 종결」: Carlos Marichal, "Mexican Cochineal and European Demand for a Luxury Dye, 1550–1850" (Palgrave Macmillan, 2014) / Marichal & Sánchez Santiró (2018)
  • 1856년 모베인이 단일 적색 대체 발명이 아니었다는 점, 그리고 19세기 염색 매뉴얼상 업계가 천연과 합성 어느 쪽도 배타적으로 쓰지 않았다는 점: Mahapatra (2016) / Rosemary M. Baker, "Nineteenth century synthetic textile dyes: their history and identification on fabric" (University of Southampton 박사학위논문, 2011)
  • 카나리아 제도가 유럽에서 코치닐을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유일한 지역이라는 점, 그리고 등록 생산자와 재배 중인 선인장 밭에 대한 현행 지원: Gobierno de Canarias 공고 및 공공 교육 자료(CanariWiki). 과티사와 말라는 제도 내 주요 재배 마을이다.
  • Cochinilla de Canarias 원산지보호명칭의 현행 유효성과 그 지리적 범위가 제도 전체라는 점: 스페인 농림수산식품부 DOP 등록 페이지 / EU GIview, PDO-ES-01302
  • 19세기 카나리아 제도의 코치닐 호황과 붕괴,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란사로테의 생산: Sarah Mattes, "Canary Red: Preserving Cochineal and Contrasting Colonial Histories on Lanzarote" (College of William & Mary, 2015)

08이번에는 선인장을 없애는 데 쓰였다

1768년, 프랑스 식민 당국은 마다가스카르 남쪽 끝 포르도팽 요새 둘레에 침입 방지용 산울타리를 세운다. 재료는 부채선인장이었다.

선인장은 울타리에 머물지 않았다. 19세기 말에는 남부 마다가스카르 전역으로 퍼져 선인장 지대라 불리는 지역을 만들었고, 그 지역의 목축과 식량은 그 선인장 위에 얹혀 돌아가고 있었다. 소는 그것을 먹었고 사람은 그 열매를 먹었다.

1920년대 중반, 그 선인장에 코치닐류가 붙기 시작한다. 색을 만드는 상업종과 같은 종은 아니다. 같은 속에 속하는, 선인장을 죽이는 데 더 능한 다른 벌레였다.

부채선인장 줄기에 붙은 흰 솜 덩어리와 그 가운데의 붉은 점, 오른쪽에는 벌레가 남긴 자국.

FIG. 02흰 솜과 그 아래

부채선인장 줄기에 붙은 흰 솜, 그리고 그 가운데의 붉은 점. 오른쪽은 벌레가 남긴 자국이다.

찾은 것Leslie Seaton, 「Cochineal」 · Wikimedia Commons (CC BY 2.0)

누가 그것을 풀었는지, 어디까지가 의도였는지는 지금도 정리되지 않았다. 이 사건을 다룬 대표적인 연구의 제목이 「누가 말라가시 선인장을 죽였는가」다. 확실한 것은 1924년부터 1930년 사이에 남부의 선인장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다음에 온 것은 색이 아니라 굶주림이었다. 먹이를 잃은 가축이 죽었고, 1930년대 초 이 지역은 기근을 겪었다. 몇 명이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숫자가 엇갈리고, 숫자에 기대어 이 기근을 서술하는 방식 자체를 문제 삼는 연구도 있다. 당국은 코치닐 저항성 부채선인장 품종을 새로 들여왔지만, 그것은 밭과 가축이 이미 사라진 뒤의 일이었다.

사백 년 동안 사람은 이 벌레를 어떻게 하면 잘 기를 수 있을지를 궁리했다. 20세기에는 같은 속의 벌레가 어디까지 퍼지는지가 정책의 문제가 되었고, 그 값을 치른 것은 색과 아무 상관이 없던 사람들이었다.

08이 절의 근거자료 7
  • 남부 마다가스카르의 선인장 지대와 목축·식량 체계의 의존: Jeffrey C. Kaufmann, "Prickly pear cactus and pastoralism in southwest Madagascar", 2004 / Karen Middleton, "Cactus Pear as Dryland Fodder: Ambovombe Farm, Madagascar and Wellwood Farm, South Africa Compared, c.1920–1950", Journal of Agrarian Change 5(2), 2005
  • 1900~1923년의 식민 통치와 부채선인장을 둘러싼 갈등: Karen Middleton, "La Question des Raketa: Colonial Struggles with Prickly Pear Cactus in Southern Madagascar, 1900–1923"
  • 1924~1930년 코치닐류에 의한 선인장 박멸과, 그 의도성 및 책임 소재가 논쟁 대상이라는 점: Karen Middleton, "Who Killed 'Malagasy Cactus'? Science, Environment and Colonialism in Southern Madagascar (1924–1930)", Journal of Southern African Studies 25(2), 1999
  • 이 사건의 역사적 기억이 지역 공동체와 생태학자 사이에서 계속 재서술되어 왔다는 점: Karen Middleton, "Renarrating a Biological Invasion: Historical Memory, Local Communities and Ecologists", Environment and History, 2012
  • 1930년대 초의 기근과, 사망자 수치에 기대는 서술 방식 자체에 대한 비판: Jeffrey C. Kaufmann, "Forget the Numbers: The Case of a Madagascar Famine", History in Africa 27, 2000
  • 1768년 포르도팽 요새의 산울타리 도입과 1930년 저항성 품종 재도입: P. Larsson, "Introduced Opuntia spp. in Southern Madagascar" (SLU 학위논문, 2017). 이 두 항목은 아직 학위논문 한 편에 기대고 있다.
  • 생물방제에 쓰이는 종이 상업 색소종 D. coccus와 다르다는 구분: Schowalter (2025)

09성분표는 이름을 말하고 기원은 말하지 않는다

코치닐이 식품과 화장품으로 돌아온 자리는 취향만으로 비지 않았다. 규제와 가격과 색 안정성이 함께 움직였고, 그 가운데 규제 쪽 연표가 가장 또렷하다.

1976년 미국 FDA는 FD&C 적색 2호를 식품 첨가물에서 금지했다. 1970년에 발표된 소련의 연구 두 건이 발암 가능성과 생식 영향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 출발점이었다. FDA 과학자들은 그 연구가 쓴 시험물질과 방법에 의문을 달았고, FDA가 직접 수행한 장기 급여시험도 설계와 시료 보존 문제로 안전성 판정에 쓸 수 없다는 결론이 났다. 남은 것은 유해함을 확정하지 못한 채 안전함도 확정하지 못한 상태였고, FDA 커미셔너는 그 상태에서 잠정 등재를 끝냈다. 비워진 자리에는 또 다른 콜타르 염료인 적색 40호가 들어왔고, 천연 유래 색소에 돈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렇게 돌아온 색에는 이름이 붙었다. 2009년 1월 5일 FDA는 코치닐 추출물과 카민을 식품과 화장품 라벨에 이름 그대로 적도록 하는 최종 규칙을 냈고, 2011년 1월 5일 발효시켰다. 그전까지 이 색은 인공색소 같은 포괄 표현 뒤에 숨을 수 있었다. FDA는 이 색소가 섭취와 흡입과 접촉으로 감작과 반응을 일으킬 수 있고 아나필락시스 사례도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유럽의 판단도 같은 방향이었다. EFSA는 2015년 E120 재평가에서 기존 일일섭취허용량을 고칠 이유가 없다고 보고 그것을 카르민산 기준 2.5 mg/kg 체중/일로 다시 표기했다. 알레르기 반응에 대해서는 역치 용량을 설정할 수 없다고 명시했고, 과민반응의 원인이 단백질성 불순물이므로 제조 공정에 적절한 정제 단계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런데 FDA는 한 가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곤충에서 유래했다는 사실까지 표시하라는 요구였다. 이유는 그 정보가 식품법이 말하는 중요 정보가 아니며, 유래가 사용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피하고 싶은 소비자는 성분표에 적힌 이름만으로 식별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래서 논쟁은 성분표 안이 아니라 바깥에서 벌어졌다. 2012년 4월, 스타벅스는 채식주의자와 비건 고객의 항의를 받고 딸기 음료와 일부 베이커리 제품에서 코치닐 추출물을 빼고 토마토에서 얻은 리코펜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FDA는 그 정보가 식품법이 말하는 중요 정보가 아니라고 적었다.

09이 절의 근거자료 4
  • 1976년 FD&C 적색 2호 금지, 1970년에 발표된 소련 연구 두 건이 촉발한 우려, 시험물질·방법에 대한 FDA 과학자들의 의문, FDA 자체 급여시험을 안전성 판정에 쓸 수 없다는 결론, 그리고 안전성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FDA 커미셔너가 내린 잠정 등재 종료 결정: Federal Register 41 FR 5823–5825, "FD&C Red No. 2; Termination of Provisional Listing" (1976-02-10) / Certified Color Manufacturers Association v. Mathews, 543 F.2d 284 (D.C. Cir. 1976) / NCBI Bookshelf, "Case Studies in Environmental Medicine — FD&C Red No. 2 (Amaranth)"
  • 2009년 1월 5일 최종 규칙과 2011년 1월 5일 발효, 이전의 포괄 표시, 감작·아나필락시스 인정, 곤충 유래 표시 요구의 기각과 그 논거: Federal Register, "Listing of Color Additives Exempt From Certification; Food, Drug, and Cosmetic Labeling: Cochineal Extract and Carmine Declaration" (2009-01-05) / FDA, "Small Entity Compliance Guide: Declaration by Name on the Label of All Foods and Cosmetic Products That Contain Cochineal Extract and Carmine"
  • 2015년 E120 재평가에서 기존 ADI를 개정할 이유가 없다고 보고 이를 카르민산 기준 2.5 mg/kg 체중/일로 표현한 것, 알레르기 역치 설정 불가, 단백질성 알레르겐 노출을 줄이기 위한 적절한 정제 단계 권고: EFSA ANS Panel, "Scientific Opinion on the re-evaluation of cochineal, carminic acid, carmines (E 120) as a food additive", EFSA Journal 13(11): 4288, 2015, doi:10.2903/j.efsa.2015.4288
  • 2012년 4월 스타벅스의 리코펜 전환: NPR, "Starbucks Ditches Bug-Based Red Dye In Strawberry Drink" (2012-04-19)

10그래서 이것은 아직 농사다

2024년을 기준으로 세계 코치닐 공급의 85퍼센트에서 90퍼센트가 페루에서 나온다. 그해 수출액은 7,900만 달러였고, 약 10만 페루 가구의 소득이 여기에 걸려 있다. 멕시코와 중국과 스페인도 생산한다.

벌레를 건너뛰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2018년 덴마크 연구진은 곰팡이 Aspergillus nidulans에서 카르민산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다만 저자들 스스로 배지에 녹아 있는 양이 상업 생산에 필요한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고 적었다. 2023년에는 효모에서 이 경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세운 연구가 나왔다. 효소 발현을 조절하고 전구체 공급을 늘려 5리터 발효조에서 리터당 7.6밀리그램에 이르렀고, 저자들은 이를 미생물에서 보고된 최고치라고 적었다. 단위가 리터당 밀리그램이다.

시장 조건도 움직이는 중이다. FDA는 여섯 가지 석유계 인증색소를 2027년 말까지 식품 공급에서 없애기 위해 업계와 협력하고 있다. 적색 3호처럼 승인 자체를 취소한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내놓은 자발적 약속을 추적하는 방식이다. 같은 기간 갈디에리아 추출 청색과 나비완두꽃 추출물, 가데니아 청색 같은 천연 유래 색소가 새로 승인됐다. 다만 합성색소가 빠지는 것이 곧 코치닐 수요의 증가로 이어진다고 말할 근거는 아직 없다.

한편에서는 계약서가 값을 정하고, 다른 편에서는 규제가 이름을 정하고, 또 다른 편에서는 실험실이 벌레를 빼려 한다. 길러서 거두는 것은 성분표에 적힌 제제가 아니라 그 앞의 벌레다. 그 아래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오백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선인장을 심고, 벌레를 옮겨 붙이고, 아흔 날을 세고, 손으로 거두고, 말린다.

붉은색을 얻으려면 먼저 선인장을 심어야 한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선인장을 없애는 데 같은 속의 벌레가 쓰였고, 페루의 밭에서는 지금도 그것을 심는다.

10이 절의 근거자료 4
  • 페루의 85~90퍼센트 점유, 2024년 수출액 7,900만 달러, 약 10만 가구: Schowalter (2025). 기준 연도가 2024년이므로 본문도 그 해를 명시했다.
  • Aspergillus nidulans에서의 카르민산 생산과 상업 수준에 미달하는 수율: Rasmus J. N. Frandsen et al., "Heterologous production of the widely used natural food colorant carminic acid in Aspergillus nidulans", Scientific Reports 8, 2018, doi:10.1038/s41598-018-30816-9
  • 효모에서 경로 전체를 재구성해 5리터 발효조에서 7,580.9 μg/L에 이른 것과 그것이 미생물에서 보고된 최고치라는 저자들의 서술: Qian Zhang, Xinglong Wang, Weizhu Zeng, Sha Xu, Dong Li, Shiqin Yu, Jingwen Zhou, "De novo biosynthesis of carminic acid in Saccharomyces cerevisiae", Metabolic Engineering, 2023
  • 여섯 가지 석유계 인증색소를 2027년 말까지 없애기 위한 업계 협력이 승인 취소가 아니라 자발적 약속의 추적이라는 점, 적색 3호의 승인 취소와 2027년 1월 15일 준수 시한, 그리고 2025년의 신규 천연 유래 색소 승인: FDA, "Tracking Food Industry Pledges to Remove Petroleum Based Food Dyes" / FDA, "FDA Encourages Food Manufacturers to Accelerate Phasing Out Use of FD&C Red No. 3" / FDA, "FDA Approves Gardenia (Genipin) Blue Color Additive"

생각해볼 질문

성분표는 무엇이 들었는지 알려준다.

그렇다면 무엇을 굳이 알릴 필요가 없는 정보로 분류할지는 지금 누가 정하고 있는가.

오늘 당신이 집어 든 물건에서, 당신은 그 결정을 누구에게 맡기고 있는가.

오늘의 한 문장

오백 년 동안 이 빨강은 한 번도 발명되지 않았고, 매번 길러졌다.

더 보고 싶다면

Amy Butler Greenfield, 『A Perfect Red』

코치닐 한 품목으로 대항해시대의 경제사를 통과하는 대중 역사서다. 이 회차가 압축한 대목들이 어디서 늘어나는지 볼 수 있다.

Bodleian Libraries, 《멘도사 코덱스》 디지털 사본

공물 자루가 그려진 지면을 직접 넘겨 볼 수 있다. 색이 조세의 단위였다는 말이 그림 한 장으로 바뀐다.

Karen Middleton, 「Who Killed 'Malagasy Cactus'?」

이 회차의 여덟 번째 절이 통째로 기대고 있는 연구다. 제목의 물음표가 왜 붙어 있는지가 논문의 내용이다.

Jo Kirby & David Saunders, 「A Comparison of the Fading of Dyestuffs as Textile Colourants and Lake Pigments」

미술관에서 보는 붉은색이 왜 원래의 붉은색이 아닌지를 열네 달의 측정치로 설명한다.

익숙한 결, 뜻밖의 결, 남겨진 결.